한니발 렉터의 잔학함에 감춰진 아름다움이란...? 양들의 침묵 제작 비화부터 한니발 렉터의 성장

인트로덕션

 

 

앤서니 홉킨스, 가스파르 울리엘, 마스 미켈센 3명의 명배우가 연기해온 한니발 렉터. 원작자 토머스 해리스는 처음에는 조연으로 등장시켰지만, 그 존재감에 이끌려 소설 양들의 침묵에서 주인공으로 한니발 렉터를 그렸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한니발 렉터의 기본 정보부터 성장, 그리고 연기한 3명의 배우에 대해 알아보겠다. 

 

※ 스포가 포함되니, 주의

 

한니발 렉터는 어떤 인물? 모델은?

 

 

앤서니 홉킨스가 15분 분량의 출연으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영화 양들의 침묵. 토마스 해리스가 만들어낸 한니발 렉터에 사실 모델이 된 인물이 있었다. 죄수 + 의사 + 사이코패스라는 현실을 벗어난 악의 카리스마에 모델이 된 인물이 있다니 놀랍기 그지없다. 

 

전설의 악역! 한니발의 인물상

 

한니발 렉터는 조용하고 냉정한 풍모에서 상상할 수 없는 가공할 내면을 갖고 있으며 그 양면성에 홀린 관객도 많다. 극중에는 그 내면이 말로 새어나오는 장면이 여럿 존재한다. 

 

양들의 침묵 (1991)에서 클라리스 스털링 (조디 포스터)이 내민 검사지에  [날 조사하려던 여론조사원의 간을 잠두콩과 와인에 곁들여 먹었어.] 라고 말하는 장면이 유명하다. 이후 육식동물이 하는 듯한 연기도 어우러져 그의 엽기성과 우아성이 동시에 표현되고 있는 명장면이다. 그리고 음악으로 더욱 그 우아함과 귀족스러움을 표현하고 있다. 음악을 사랑하는 렉터가 간수 살해 후,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에 취해가는 모습에 그의 미학이 응축되어 있다. 

 

한니발의 모델

 

원작자 토마스 해리가 모델로 삼은 살인마는 1960년대 초에 만난 알프레도 밸리 트레비뇨이다. 그 당시 언론인이었던 해리스는 한 살인사건 취재차 멕시코에 갔다. 해리스는 취재 직전 탈옥을 시도하다 부상당한 죄수 딕스 아스큐 시몬스와 인터뷰를 하게 된다. 그리고 부상당한 시몬스를 구하고 교도소에서 의사로 근무하고 있는 사라자르 박사와도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해리스가 만난 사라자르 박사는 교도소 직원으로 추정되는 인물로 해리스를 역취재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질문과 태도는 놀라울 정도로 날카로워 그야말로 닥터라는 호칭을 구현했다고 한다. 시몬스 희생자에 대한 사라자르 박사의 생각은 지적이면서도 섬뜩했다. 부드러운 태도와 날카로운 통찰력을 가진 박사 덕분에 취재는 무사히 종료된다. 해리스는 취재 후 다음에 텍사스에 올 일이 있으면 같이 밥 먹으러 가자고 권유하자 사라자르 박사는 감사합니다, 해리스 씨. 또 제가 텍사스에 왔을 때 갑시다 라고 대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리스는 나중에 사라자르 박사가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 같은 교도소 직원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사실 그는 알프레도 밸리 트레비뇨라는 죄수였던 것이다. 트레비뇨는 동성애자를 우습게 여기는 풍조가 강한 멕시코 출신으로 게이였다. 트레비뇨는 연인을 격분시켜 그 연인을 분노한 나머지 죽여버렸고, 나아가 그 연인을 잘게 썰어 묻고 죄를 면하려 했다. 그는 많은 히치하이커들에게 비슷한 살인을 저지른 혐의를 받고 있다. 트레비뇨의 엽기적인 모습이 해리스의 작품에 큰 영향을 미쳐 한니발 렉터 박사의 모델이 됐다. 

 

앤서니 홉킨스

 

 

앤서니 홉킨스는 미국 Vanity Fair와의 인터뷰에서 한니발 렉터 박사를 연기하면서 과거 트라우마나 실존하는 살인마의 영향이 아니라 홉킨스 연기 교사의 영향을 받았음을 밝혔다. 

 

홉킨스는 왕립 연극 아카데미에서 연극 교사 크리스토퍼 페츠의 지도를 받았다. 스타니슬라프스키 메소드 (연기이론) 교사가 있는데, 죽음을 부르는 존재로 학생을 지적으로 뿔뿔이 해체해 버렸다며 페츠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지적이었다고 회고했다.

 

 

한니발 렉터 박사가 앤서니 홉킨스가 제1의 후보가 아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에는 로버트 드니로부터 로버트 듀발까지 많은 거물급 배우들의 이름이 오르내렸고, 더스틴 호프만과 모건 프리먼 등 이 역할을 지원하는 배우도 여럿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양들의 침묵의 조나단 데미 감독은 원조 제임스 본드로 알려진 영국 배우 숀 코넬리로 결정했다. 그러나 숀 코넬리는 곧바로 제의를 거절해 왔다고 한다.

 

데미 감독은 양들의 침묵 개봉 25주년 기념 인터뷰에서 앤서니 홉킨스도 좋아하지만 손 코넬리도 훌륭한 존재가 될 수 있다. 가장 영화가 잘 팔리는 길을 걷기 위해 당시 코넬리는 상업적으로 성공했기 때문에 먼저 코넬리에게 각본을 보냈지만 역할을 맡지 않겠다고 거절해 왔다고 밝혔다. 

 

전설은 어떻게 이루어졌나. 한니발의 성장

 

매력 넘치는 악의 카리스마, 한니발 렉터. 앤서니 홉킨스의 광기 어린 연기로 스릴러의 금자탑이 된 양들의 침묵. 주인공 한니발 렉터는 냉정과 광기의 양면성이라는 성격에 그치지 않고 이후 가스파르 울리엘, 마스 미켈센에 의해 새로운 인물상도 생겨났다. 

 

소년기 ~ 청년기 (한니발 라이징)

 

 

제2차 세계대전 말기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렉터는 여동생과 부모님 이렇게 4명이서 성에 살고 있었다. 그러나 폭격으로 부모가 사망, 도망친 리투아니아 시민 6명은 굶주림을 이기지 못해 여동생을 먹어치운다. 그리고 렉터는 기억을 잃었다.

 

8년 후, 전쟁 고아가 된 한니발은 삼촌의 편지로 프랑스로 향한다. 프랑스에서 미망인 무라사키라는 여성을 만난다. 최연소로 의학 학교에 합격하여 그녀와 함께 파리로 향한다. 렉터는 자백제를 스스로에게 맞힘으로써 과거으 기억을 파헤친다. 실마리를 얻어 차례차례 범인을 살해, 리더격인 그루터스와 상대한다. 여동생 일부를 스스로도 먹었다는 진실을 통보받은 렉터는 화가 나서 칼을 꽂고 살아있는 그루터스의 뺨을 물어 뜯는다. 

 

만년기 1 (레드 드래곤, 양들의 침묵)

 

 

렉터는 정신과 의사로서 독립한다. 저명인사들이 모일수록 인기를 끌면서 비상식적인 환자를 보는 동안 흉포성이 깨어나기 시작한다. 렉터는 FBI 윌로부터 난사건 수사 협조를 구하지만, 렉터가 그 범인임을 알게 되어 체포된다. 수감 중에도 논문 발표 등 영향력이 꺾이지 않아 다시 윌을 돕게 된다. 그 후, FBI 아카데미의 클라리스와 함께 버팔로 빌 사건을 해결로 이끄는 한편, 자신은 도망친다. 이때 렉터는 클라리스에게 끌린다.

 

만년기 2 (한니발)

 

 

이탈리아로 건너가 필 박사로서 제2의 인생을 사는 한니발 렉터. 그러나 렉터에게서 도망친 메이슨 때문에 현상금 수배가 된다. 게다가 클라리스가 조직으로부터 고립되어 있다는 말을 듣고 미국으로 도피하기로 결심한다. 미국에서 렉터는 메이슨 일당에게 붙잡히지만, 클라리스에게 구조된다. 

 

클라리스가 고립된 원인이기도 한 상사 폴을 초대해 디너를 개최, 그녀의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폴의 뇌를 먹어 살해한다. 식사의 마지막 클라리스에게 키스하는 동안 수갑이 채워져 렉터는 스스로의 손목을 잘라내고 다시 도망친다. 

 

어나더 스토리 1. (원작)

 

 

렉터는 클라리스에게 죽은 여동생의 모습이 겹쳐 약물로 그녀를 최면 상태로 만든다. 폴과의 저녁 식사에서도 클라리스에게 폴의 뇌를 먹이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렉터는 클라리스와 남녀 사이로까지 발전. 사이좋게 춤을 추는 모습이 아르헨티나에서 발견된다.

 

어나더 스토리 2. (드라마판 한니발)

 

 

렉터는 윌에게 협력하는 이면에서 범인과 연결되어 있거나 렉터를 의심하는 인물을 살해하는 등 위험한 일면을 내비친다. 배신과 신용을 반복하면서 윌과 신뢰관계를 쌓아간다. 마지막에서 레드 드래곤의 범인 달라하이드에게 습격당한다. 치명상을 입은 렉터와 윌은 달라하이드를 살해. 두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고 벼랑으로 구른다. 

 

한니발 렉터를 연기한 배우들

 

가장 무서운 한니발. 앤서니 홉킨스

 

 

한니발 렉터라고 하면 앤서니 홉킨스를 상상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앤서니 홉킨스는 양들의 침묵(1991), 한니발(2001) 그리고 레드 드래곤(2002)에 출연했다. 첫 번째 작품에서는 그 특대적인 임팩트와는 달리 극중 출연 시간은 불과 15분 미만이었다. 렉터의 공포를 글어내기 위해 홉킨스는 눈을 깜박이지 않는 연기를 했다. 그 이유는 과거 런던에서 만난 괴한이 눈을 깜박이지 않아 공포를 느꼈다는 실제 체험에서 왔다고 한다. 

 

클라리스와 렉터가 옥중에서 대화하는 장면에서는 바스트업으로 번갈아 말하는 특징적인 장면이 사용되고 있으며, 그 높은 연기력으로 작품의 공포를 증폭시켰다. 

 

젊은 날의 렉터 박사, 가스파르 울리엘

 

 

한니발 라이징 (2007)에서 젊은 날의 렉터를 연기한 가스파르 울리엘. 그는 2022년 스키를 타다가 사고를 당해 세상을 떠났다. 

 

마음에 어둠을 품은 캐릭터를 연기하다 일직 세상을 떠난 조커 역의 히스 레저와 겹치는 부분이 잇는데, 두 사람 모두 마음속 깊이 캐릭터를 즐겼다고 한다. 렉터를 연기하는데 있어서 다크한 부분을 마치 게임처럼 즐겼다고 답한 적이 있다. 또 역할을 위해 의대 해부학 수업까지 참여했다고 한다. 렉터가 미치광이로 변해가는 과정을 멋지게 소화해낸 가스파르는 앞으로가 기대되는 배우였던 만큼 부고에는 전 세계에서 애틋한 목소리가 쏟아졌다. 

 

마스 미켈센이 연기한 한니발의 특이성

 

 

드라마판 한니발에서 렉터를 연기한 마스 미켈센. 양복을 차려입고 신사적인 면과 그 이면에 숨어있는 광기를 연기했다. 영화의 렉터와는 다른 세련된 아름다움이 있고, 그 아름다움이 갭을 만들어 잔학함을 돋보이게 했다.

 

드라마 버전의 매력적인 장면으로 인육을 조리해 먹는 장면을 빼놓을 수 없다. 인육이기 때문에 기분 나쁘지만 채색된 인육 요리에 배고픔을 자극받는다는 신기한 감각을 준다. 요리뿐만 아니라 예술 같은 시체, 공포와 편안함을 동시에 느끼는 음악 등 오감을 즐겁게 해주는 사이코 스릴러라는 틀을 넘어선 작품으로 완성되었다.

 

 

양들의 침묵의 진정한 매력 

 

영화 양들의 침묵을 연출, 각본, 배역, 영상, 음악의 시점으로 철저하게 해설한다. 아카데미상 주요 5개 부문을 제패한 사이코 호러 명작. 조디 포스터, 앤서니 홉킨스가 출연. 원작은 토마스 해리스의 베스트셀러 소설. 영화 역사에 찬연히 빛나는 양들의 침묵의 진정한 매력, 그리고 결말에 대해서 알아보자.

 

양들의 침묵 줄거리

 

FBI 훈련생인 클라리스는 상사의 지령을 받고 도주중인 연쇄살인범 버팔로 빌 수색에 착수한다. 버팔로 빌의 표적은 젊은 여성이었고, 피해자의 시신은 모조리 피부가 벗겨져 있었다. FBI는 연쇄살인범을 잡기 위해 최수인 한니발 렉터에게 협조를 부탁한다. 

 

렉터는 정신과 의사 출신으로 범죄자 심리분석에 능한 반면, 살해한 인간의 장기를 먹는 뚜렷한 이상범죄자다. FBI의 부탁을 무시하고 상대하지 않는 렉터였지만, 유일하게 클라리스에게는 마음을 열고 사건 해결을 위한 조언을 해줄 것을 약속하는 것이었다. 

 

클라리스는 렉터의 협력에 의해 버팔로 빌을 몰아간다. 렉터는 경찰에 협조하는 대가로 경비가 허술한 감옥으로 이송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경비원을 잔학하게 살해하고 감쪽같이 탈옥에 성공한다. 

 

한편 클라리스는 버팔로 빌딩의 주거지를 특정하고 잠입 수사를 시도한다. 어둠 속에서 범인에게 붙잡혀 위기에 빠지는 클라리스였지만, 공포를 이겨내고 멋지게 범인을 사살하는 데 성공한다. 클라리스는 연쇄살인사건을 해결로 이끌면서 FBI 수사관이 되었다. 그런 그녀에게 렉터로부터 전화가 걸려온다. 렉터는 클라리스에게 축하의 말을 보내며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고 사라진다. 

 

생략을 활용하여 쇼킹한 효과를 주는 연출의 매력

 

 

토마스 해리스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FBI 여성 훈련생과 엽기살인마의 기묘한 교류를 그린 사이코 호러 금자탑. 공포영화 최초로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할 뿐만 아니라 주요 5개 부문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 각본상)을 제패한 사상 3번째 영화다. 그리고 이 양들의 침묵 이후 주요 5개 부문 제페의 위업을 이룬 영화는 나타나지 않았다. 

 

조나단 데미 감독 (1944~2017)은 B급 영화의 제왕으로 유명한 프로듀서 · 로저 코먼 (1926~) 밑에서 실력을 키워 저예산이면서도 알찬 작품을 만들어 온 장인 감독이다. 쓸데없는 묘사를 생략하고 쇼킹한 효과를 가져오는 숙련의 연출은 이 작품에서도 마음껏 발휘되고 있다. 

 

영화는 FBI 연수생 클라리스가 산림에서 훈련을 받던 중 상사로부터 호출을 받는 장면으로 막을 올린다. 상사가 기다리는 방으로 달려가는 클라리스의 액션은 생략없이 비춰진다. 언뜻 보기에 사족적인 묘사 같지만 엘리베이터에서 만원의 남성에게 둘러싸이는 컷이 명백하게 드러나듯 클라리스의 행동을 따라가는 것만 같았던 일련의 영상은 그녀가 처한 환경 - 압도적으로 남성 우위의 사회를 은근하고 직접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방에 도착한 클라리스가 벽으로 시선을 돌리면 그곳에는 엽기살인범 버팔로 빌의 먹이가 된 여성들의 사진이 붙어 있다. 카메라는 남성 사회에서 씩씩하게 생존하는 클라리스를 계속 쫓고 마지막으로 여성들의 시신을 비춘다. 그렇게 함으로써 관객들은 클라리스에 대한 감정이입을 강화하고 작품에 제시하는 무자비한 세계관을 일거에 파악한다. 실해 장면을 직접 그리지 않고도 관객을 끌어들여 충격을 주는 훌륭한 오프닝이다. 

 

이외에도 생략을 활용한 연출은 곳곳에서 빛난다. 렉터가 탈옥하는 장면을 보면, 렉터는 간수 2명을 순식간에 살해하고 피해자 행세를 하며 구급차에 실려 감쪽같이 달아난다. 이 장면에서는 구급차 안에서 렉터가 일어나 가면을 벗으면서 컷이 걸린다. 그 후의 참극은 보는 이의 상상에 맡겨진다. 

 

아무리 비용을 들여 리얼을 가장해도 극영화인 만큼 진짜 시신이나 살인 현장은 비출 수 없다. 조나단 데미는 영화 표현의 한계를 거꾸로 잡고 결정적인 순간을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표현의 강도를 최대급으로 높이는 데 성공했다. 

 

렉터는 클라리스의 아버지를 대신했나 ~ 각본의 매력 ~

 

원작은 토머스 해리스가 1988년 발표한 동명 소설. 주인공은 남다른 IQ를 자랑하는 정신과 의사이나 인육식을 선호하는 사이코패스인 한니발 렉터. 이 작품은 렉터를 주인공으로 한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이며, 첫 번째 레드 드래곤, 세 번째 한니발, 네 번째 한니발 라이징도 영화화되었다. 참고로 1988년 개봉한 영화 형사 그레이엄은 레드 드레곤을 원작으로 하지만 렉터 역은 홉킨스가 아닌 브라이언 콕스가 맡았다. 

 

원작은 클라리스의 상사 크로퍼드의 내면과 사생활에 초점ㅁ을 맞추는 등 서브 스토리에 두텁게 자리 잡았지만 영화판 시나리오는 클라리스와 렉터의 관계에 초점을 맞춰 눈부신 효과를 내고 있다. 

 

클라리스를 보는 렉터는 그녀에게 연애 감정을 품고 있는지, 부모 마음을 품고 있는지 확실치 않다. 반면 클라리스는 열 살 무렵 가장 사랑하는 아버지를 잃은 것이 트라우마로 남아 있고, 렉터의 지시에 따라 사건 해결에 도전한다는 구도는 유사 부녀 관계(=사이비적인 부모와 자식 관계)를 떠올리게 한다. 

 

물론 클라리스에게 렉터는 엽기 살인마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다. 일면적으로 보면, 그녀는 사건 해결을 위해 렉터를 이용하고 있을 뿐이지만, 다른 각도에서 보면 렉터가 부과한 시련을 극복함으로써, 강인함을 획득하고, 제 몫의 형사에게 키워졌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FBI 수사관으로 승진한 클라리스는 크로퍼드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굳은 악수를 나눈다. 돌아가신 아버님도 좋아하실 거라는 크로퍼드의 대사는 어딘지 아이러니를 자아낸다. 관객들은 클라리스의 미소 뒤에 정말 감사의 인사를 드려야 할 상대는 크로퍼드가 아니라 렉터가 아닌가 하는 갈등을 읽고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복잡한 감정을 품을 것이다. 그런 내면의 갈등을 증명하듯 크로퍼드와 대화한 직후 렉터로부터 전화를 받은 클라리스는 할 말을 잃고, 그의 이름을 연호할 수밖에 없다. 

 

사이코 호러로서 제1급의 완성도를 자랑하고 인간묘사에도 뛰어난 양들의 침묵 시나리오를 다룬 이는 1952년생의 각본가 테드 탈리. 이 작품으로 훌륭하게 아카데미상 최우수 각색상을 획득했다. 참고로 제목 양들이 가리키는 것은 클라리스가 어린 시절 구하지 못한 어린 양들이다. 그가 FBI 수사관이 돼 상원의원 딸을 구함으로써 트라우마를 극복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영화사에 남을 악역은 어떻게 태어났다 ~ 배역의 매력 ~ 

 

주인공 클라리스로 분한 조디 포스터는 1988년 개봉한 사회파 드라마 고발의 행방으로 아카데미 최우수 여우주연상을 수상하였고, 두 번째 영광을 차지한 현대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명배우. 당초 미셸 파이퍼와 맥 라이언이 캐스팅 후보에 올랐다고 하지만, 본인의 희망에 따라 조디 포스터가 연기하기로 결정되었다. 타고난 억제된 연기로 작품의 격조를 몇 단계 끌어올리고 있다. 

 

클라리스와 짝을 이루는 한니발 렉터를 박진감 있게 연기한 영국이 낳은 명배우 앤서니 홉킨스. 2001년 우주여행 (1968)에 등장하는 인공지능 HAL9000의 목소리와 티파니에서 아침식사를로 알려진 문호 트루먼 카포티의 말투를 참고해 역할을 만들어내 영화 역사상 남을 악역을 훌륭하게 조형해 보였다. 

 

 

클라리스와 렉터의 대화 장면은 클로즈업 컷백 (두 인물을 변갈아 비추는 촬영 기법)으로 나타난다. 갑작스러운 시선의 움직임, 입술 떨림 등 아주 미세한 표정 변화에 따라 숨을 들이키는 듯한 긴장감이 생겨나고 있다. 

 

긴장감 있는 연기가 펼쳐지는 가운데 요소요소에서 역동적인 액션이 작렬해 보는 이들을 놀라게 한다. 렉터가 간수에게 수갑을 채워 자유를 빼앗고 경봉으로 때려 죽이는 장면에서는 피해자의 모습이 드러나지 않고, 흰 셔츠를 돌려 피로 붉게 물들이는 렉터의 야수 같은 모습만 비춰진다. 지금까지의 정적인 연기와의 격차가 장면의 임팩트를 강화하고 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연쇄살인마 버팔로 빌로 분한 미국 출신 배우 테드 레빈. 여장 취미가 있는 엽기살인마라는 미친 캐릭터를 괴연하며 인기를 얻었다. 참고로 시체를 가공해 장식품을 만든다는, 정말 징그러운 캐릭터상은 에드 게인 및 테드 밴디라는 두 명의 실존 엽기 살인범이 모델이다. 

 

정확한 카메라 워크로 캐릭터의 콤플렉스를 선명하게 표현

 

촬영감독을 맡은 일본계 미국인 2세 타쿠 후지모토. 조나단 데미 감독과는 명콤비로 불리며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출세작 식스센스 (1999)의 어둡고 차가운 영상을 다룬 것으로 유명하다. 

 

클라리스가 처음 렉터를 찾는 장면에서는 그녀의 주관 샷을 능숙하게 섞어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이 장면에서는 다른 죄수들이 클라리스의 모습을 보자마자 흥분한 듯 그녀에게 접근하려 하는 반면, 렉터는 침착한 태도로 영접한다. 처음에는 거리를 두고 말을 주고받았지만, 렉터는 클라리스에게 신분증을 보여달라고 요구하자 클라리스 쪽에서 렉터에게 다가간다. 그에 맞춰 카메라도 렉터에게 다가가 처음으로 그의 얼굴을 클로즈업으로 비춘다. 등장인물의 움직임, 상황의 변화, 그에 따른 감정의 흔들림을 적확하게 포착한 본보기와 같은 카메라 워크. 또 다른 죄수들의 액션을 프리하게 사용하는 연출도 효과가 있다. 

 

클라리스의 주관 샷은 다른 장면에서도 볼 수 있어 흥미로운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클라리스가 상사 크로퍼드와 함께 피해자 검시에 입회하는 장면에서는 굴강한 지방경찰들에게 둘러싸여 여자가 살인사건 수사를 맡느냐는 듯한 남자들의 의아한 얼굴이 클라리스의 주관샷에 의해 비춰진다. 

 

이는 스토리를 전달하는 데 꼭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캐릭터의 숨겨진 내면을 밝히는 중요한 세부사항이다. 영화 전편을 통해 클라리스가 남자들에게서 볼 수 있고, 다시 보는 묘사를 꼼꼼히 쌓음으로써 남자 사회를 살아가는 것의 어려움과 그녀의 콤플렉스가 섬세하게 표현돼 이야기의 두께와 깊이를 더해주고 있는 것이다. 

 

오케스트라와 소리를 결합한 완성도 높은 음향 표현

 

음악을 담당한 하워드 쇼어는 반지의 제왕 시리즈로 두 번의 아카데미 작곡상을 수상했다. 서스펜스의 신 히치콕 작품으로 알려진 버나드 허먼의 스코어를 방불케 하는 스트링스 중심의 오케스트레이션이 스릴을 자아낸다. 참고로 하워드 쇼어는 이 작품과 함께 서스펜스 영화의 걸작으로 유명한 세븐 (1995)의 음악도 다루었다. 

 

영화 세븐에서 다뤄지는 7개의 대죄란?

 

클라리스와 렉터가 처음 만나는 장면에서는 중반까지 음악을 사용하지 않고 두 사람의 숨 막히는 대화를 현장감 있게 보여준다. 렉터가 클라리스로부터 질문 목록을 받은 뒤에는 어두운 파도가 밀려오는 듯한 음악이 느릿느릿 울리기 시작해 요설이 되는 렉터의 변화를 돋보이게 한다.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묘사는 이후에도 반복되지만, 모두 장면 첫머리에는 사운드트랙이 사용되지 않고 대화가 진행되며 두 사람의 관계에 변화가 나타나면서 느긋하게 음악이 흘러나오기 시작하면서 질 좋은 긴장감이 조성된다. 렉터를 찾는 클라리스는 항상 신경을 곤두세워고 있기 때문에 음악의 힘으로 단번에 서스펜스를 고조시키기보다는 발소리나 숨소리 등 즉각적인 음향을 활용하는 것이 그녀의 심정에 전념하는 데 효과적이다. 관객의 심리를 다 아는 숙력된 음악 사용이다. 

 

토마스 해리스의 원작에서 렉터가 즐겨 듣는 것은 글렌 굴드가 연주하는 바흐의 골트베르크 변주곡이다. 영화판에서 이 곡은 렉터가 간수를 살해하기 직전의 장면에서 사용된다. 간수에게 닥치는 액션을 계기로 우아하나 피아노 선율은 멎고 하워드 쇼어의 쇼킹한 오케스트라로 바뀐다. 정말 전율적인 음악 효과다. 참고로 극중에서 흐르는 골트베르크 변주곡은 글렌 굴드가 아닌 제리 치머먼의 연주 음원이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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